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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 11주차 입덧과 극복
    임신과 돌봄 2020. 5. 1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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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 11주차

     이제 임신 11주차에 접어들었다. 예쁨이의 신체기관은 자리를 잡았고 여전히 심장은 일반 성인보다 빠르게 뛰고 있다. 양수에 둥둥 떠 헤엄을 치기도 한다. 중요한 감각을 배우고 있는 시기이고 이등신에서 삼등신으로 변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두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의 법칙은, 시간을 계속 바라보고 피니쉬를 기다리며 세고 있자면 보통 하늘에 보통 구름 가듯 참 느리게 가는 법인데 임신은 매일매일 몇 주 며칠을 세며 사는데도 불구하고 참 빠르게 지나간다. 10주차에 들어서며 와 벌써 10주차다 생각했는데 바로 또 11주차가 되었다. 하지만 주차가 계속 늘어가는 것과 임신 적응력이 늘어가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느끼며 산다. 매번 만나는 모든 순간이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임신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둘째 이상을 가진 부모들의 현실이 궁금하기도 하다. 익숙해지셨을까? 능숙해지셨을까?

     임신 11주차에 접어들면 임신 1기가 끝났다고 말한다. 이것은 책에서 본 것도 아니고 전문 출처가 있는 자료에서 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임신 1기, 2기, 3기 이런 게 맞는 용어인지는 모르겠으나 극히 드물게 이 ‘기수’를 사용하여 임신 진행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임신 1기는 언제까지일까를 찾아보니 임신의 시작을 2주차로 여기며 첫 달부터 셋째 달까지 1기, 넷째 달부터 여섯째 달까지 2기, 여섯째 달부터 아홉째 달까지를 3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플에서는 12주차가 임신 1기의 마지막이라고 한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지금 우리는 총 11주차니까 임신 시작 2주차를 빼면 9주차를 지나온 것이니 이 셈법으로는 1기를 마치고 2기를 시작하는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기수'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를 해봐야겠다.

     

     #입덧

     아내는 여전히 자신과의 싸움 중에 있다. 입덧하는 아내에게는 아무 일이 없어도 아무일이 있는 것이다. 전에 말했듯이 먹덧으로 시작한 입덧이 메스꺼움과 역함이 올라오는 욱욱 입덧으로 진화되었고 지금은 간혹 토를 꾹 참거나 참다못해 토해버리는 토덧도 볼 수 있다. 며칠 전 아내가 너무 충격적인 글을 봤다며 사색이 되어 내게로 왔다. 어떤 사람이 올린 ‘입덧은 언제까지 하나요?’라는 질문에 ‘출산일에도 입덧으로 토하고 출산하러 갔어요.’라는 댓글이 달린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아내가 이 말을 해주며 두려움에 떨길래 나는 이미 [임신대백과]에서 공부해 놓은 지식으로 마음을 안정시켰다. “보통 입덧은 임신 7-9주에 시작되고 대개 12주 정도부터 서서히 수그러든데. 정말 긴 사람은 20주까지 간다더라고. 조금만 더 애쓰면 좋아질거야.” 내 말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없는 아내이지만, 약간의 화색을 띄우며 안도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나는 아내의 입덧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먹거리들을 저장해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찾는 것만 찾는다. 보통 찾는 것은 상큼하고 차가운 음식, 달달한 과일이나 젤리 정도이다. 그리고 좋아하진 않지만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빨갛게 무친 나물들, 구황작물들, 기름기가 적은 음식, 느끼하지 않은 음식, 냄새가 없는 음식들이다. 지난 주말 오전엔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어 해서 얼른 만들어 봤다. 그런데 아내는 먹지 못했다. 내가 평소처럼 치즈를 넣었기 때문이다. 김치밥이 피오씁니다는 우리가 애정 하던 레시피다.

     

    김치볶음밥. 달걀 반숙은 임신부에게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완숙.

     

     넣었던 치즈는 당근이나 양파처럼 다시 꺼낼 수가 없다. ‘엎그러진 물’처럼 ‘볶아버린 치즈’라는 표현도 충분히 쓸 법 하다. 최근 김치볶음밥 외에도 아내가 찾는 먹거리들은 아이스크림, 떡, 김치전, 초밥, 빵, 냉면, 생라면, 불닭김밥, 요거트 음료 등이 있다. 내가 나름 고심해서 냉동이나 냉장에 저장해 놓은 음식 리스트는 이 중에 하나도 없다. 실패다. 난 축구할 때도 헛다리 짚기 드리블을 그렇게 잘한다. 임신부의 속을 달랠 수 있다는 포*칩도 잔뜩 사놨는데 나만 먹는다. 

     아내의 입덧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나는 항상 아내의 상태를 살피며 생각을 묻는다. 먹고 싶은 게 없는지가 가장 잦은 질문이다. 그럼 보통 없다고 한다. 그럼 나는 세상 모든 음식의 이름을 대가며 다시 한번 되묻는데 아내는 그때마다 내가 말하는 음식에 대해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올 것 같다며 그만 얘기하라고 손사래를 친다. 평소엔 그렇게 좋아하던 것도 거절한다. 괜찮던 속도 내가 거북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요즘은 음식 추천을 하지 않고 아내가 무언가를 찾을 때 바로 액션을 취하려고 항시 대기중이다. 

     

     #못먹는다고 안먹으면 안된다

     이제 예쁨이는 탯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 그래서 입덧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식사가 중요하다. 영양제도 먹고는 있지만 영양제에서 흡수되는 영양소와 섭취하는 음식물에서 체내로 흡수되는 영양소는 뭔가 차이가 있을 것 같은 의과 지식 전혀 없는 일반인의 생각이다. 

     

    박대. aka서대. 생선 눈을 잘 바라보지 못하는 아내는 박대의 뒷통수가 보이게 뒤집어 놓았다.

     

     고향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생선을 주셨다. 바로 박대다. 다른 이름으로는 서대라고도 한다더라. 서해바다에서 잡히는 이 박대는 가시를 바르기가 쉬우며 내장 등을 다듬을 필요가 없는데다가 맛이 매우 좋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하루 걸러 하루 먹던 친근한 생선이다. 집에 밤늦게 도착해서 실한 박대를 보여줬다. 아내는 생선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라며 반가워했다. 얼마나 귀여운지. 아내가 매일매일 웃기만 했으면 좋겠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린 그 밤에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아니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내가 씻는 사이에 아내가 구워 놓았다. 생선 굽는 냄새는 크게 나쁘지 않았나보다. 하나하나 발라주니 오랜만에 잘 먹는다. 요즘은 아내가 잘 먹을 때가 가장 기쁘다.

     

     #입덧 치료제

     입덧의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내와 예쁨이를 위해서 입덧의 치료제(치료자) 혹은 입덧의 완화자가 되어야 한다. 입덧을 검색해 보면 구토와 구역은 임신 중 흔한 증상이지만 이로 인해 임신부의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떨어진 삶의 질을 높여줄 사람은 남편 말곤 없다. 아내의 떨어진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게 남편이 아니라 다른 무엇, 또는 다른 어떤이라면 그 남편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곧 끝날지도 모르고 어쩌면 더 오래 입덧이라는 덧에 걸려 고생할 아내를 위해 남편들은 오늘도 더 부지런히 센스를 쥐어짜서라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바로 나부터.

     아참, 입덧 완화에 있어서 시원하고 맑은 공기, 또는 바람을 쐬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임신부에게 가벼운 산책도 좋다니 일석이조이다. 그래서 나는 환기도 자주 하지만 아내와 함께 밤 산책 또한 자주 하려고 한다. 입덧이 완화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기분이 조금은 환기되는 것을 본다. 그럼 나도 좋아진다. 내가 좋기 위해서는 아내를 좋게 해야 한다. 결국 아내를 좋게 하면 나도 좋아진다. 그럼 예쁨이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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