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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 12주 1차 기형아 검사, 입체 초음파
    임신과 돌봄 2020. 5. 2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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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말했다. “여보, 12주 동안 너무 고생했어.” 아내가 말했다 “여보도 정말 고생 많았어.” 나는 별로 고생한 것도 없는데 이 한 마디에 대단한 고생이 있었다는 듯 마음이 녹았다. 이제 드디어 12주차가 되었다. 임신에 있어서 12주는 굉장히 의미 있는 숫자다. 그리고 목이 12센티가 되도록 빠져라 기다려지는 날이다. 12주차가 되면 기형아 검사를 실시하기에 그렇다. 기형아 검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부정적인 향에 비해 실제로는 크게 불안하지 않다. 다만 잘 있다는 그 반가운 한마디는 임신 기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에 오늘 우리는 풍요로워지러 간다.

     휴가가 생겨 요 며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하지만 오늘은 병원진료가 있는 날이다. 일찍 일어나 모자를 눌러쓰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내는 가는 길 차 안에서 속쓰림을 호소했다. 입덧이 끝난 건 아니지만 전보다 많이 좋아져 이제 고기도 먹고 냉장고 냄새도 맡을 수 있지만 여전히 속쓰림은 남아있다. 그래도 입덧은 보통 12주부터 사라진다고 하는데 기가막히게 아내도 12주를 기점으로 입덧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일단 속이 쓰려하는 아내는 무엇이라도 먹어야 한다. 아침 먹을 여유가 없어서 일단 편의점에 들렀다. 오늘 검사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속쓰림만 잠재울 겸 초코우유와 편의점 김밥으로 아침을 때웠다.(단것을 먹고 초음파를 보면 아이가 좀 더 활동적이라는 말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여느때처럼 좁고 경사진 지하주차장에 곡예하듯 들어가 주차를 했다. 처음엔 뭐 이런 주차장이 다 있냐며 볼멘소리를 했는데 지금은 아내마저 능숙하다(능숙할 때가 제일 위험하대. 끝까지 조심해줘).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 지나다니는 임신부들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아내처럼 누가 봐도 임신부가 아닌 것 같은 사람들부터 적당히 배가 볼록한 사람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만삭의 임신부들, 그리고 출산 후인지 환자복을 입고 지나다니거나 휠체어에 앉아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 모두 다 내 존중의 대상들이다. '대단하십니다. 위대하십니다. 애쓰십니다. 힘내십시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순산하세요, 잘 회복하세요.' 마음으로 이렇게 응원하게 된다. 

     먼저 초음파실로 향한다. 오늘은 처음으로 복부 초음파로 입체 초음파까지 본다. 들어가자마자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초음파 침대에, 나는 보호자 의자에 앉았다. 이 초음파실은 처음인데 아내가 보는 모니터와 내가 볼 수 있는 모니터가 따로 있어서 좋다. 아내 배에 차가운 젤을 응가 모양으로 짜내고 기계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바로 예쁨이의 엄청난 모습이 모니터에 담겼다.

     

     

    임신12주 초음파

     

     풉 하고 웃음을 뱉다 삼켰다. 이건 뭐 교과서임? 너무너무너무 뱃속에 태아같다. 아니, 뱃속에 태아가 맞는데 이게 너무너무 태아 같지 않은가? 손으로 그리라면 정말 잘 그릴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선을 가진 우리 예쁨이였다. 초음파 영상은 선명하지 않은데 실제 봤던 모니터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선명한 선을 가지고 있었고 생각보다 정말 많이 자랐다. 이제 정말 사람이다. 전화하면 받을 것 같고, 길 물어보면 알려줄 것 같다. 내가 12주의 태아의 모습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모니터를 처음 봤을 때의 직감은 분명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초음파 모습을 보는 순간 그냥 너무 신기하고, 임신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을 할 수 없는 어떤 무한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그저 아내가 ‘임신했다’가 아니라 우리 바로 옆에 ‘생명이 찾아왔다.’ 감격의 눈물이 다크까지 찼다. 다시 말하지만 가능하면 병원은 함께 오는 것이다.

     이리저리 초음파가 예쁨이를 비췄다. 심장도 참 잘 뛰고 있었다. 초음파 선생님은 마우스 포인터로 목의 두께와 예쁨이의 키 등을 굉장히 능숙하게 측정했다. 초음파만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기계가 아내의 배를 여기저기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할 일을 했다. 그 때 예쁨이는 꼬물꼬물 움직이다가 팔과 다리를 꼬았다. 나 쉬운 태아 아니다 라고 어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말로만 들어본 입체초음파를 볼 수 있었다. 그림자처럼 보던 일반 초음파와는 다르게 원근감과 질감까지 느껴지는 듯한 입체 초음파는 신세계였다. 처음 나왔던 휴대폰의 단음 벨소리를 듣다가 16화음 오케스트라 휴대폰 벨소리를 들었을 때의 업그레이드감이라고 하면 얼마나 많이들 이해하실까? 역시 휴대폰은 잘 걸리는 걸리버. 중요할 땐 꺼두셔도 좋습니다 스피드 011. 요금제는 나눠쓰는 비기 알 요금제................ 여하튼 아직 이목구비나 성별을 구별할만큼 뚜렷하진 않지만 입체 초음파는 확실히 머리와 몸, 팔과 다리, 탯줄과 예쁨이의 움직임이 더 섬세하게 담겼다.

     

    12주 입체 초음파. 딱 봐도 예쁘고 잘 생기고 아름답게 빚어지고 있다. 다 덤벼. 칙칙.

     

     황홀한 초음파를 마친 후 상담실에 가서 간단한 문진을 했다. 병력이나 수술력 등을 확인하고 산전검사의 항목을 체크했다. 예를 들면 풍진이나 A형 간염, B형 간염, 수두 등이었다. 오늘 또 한 번의 채혈을 통해 다시 필요한 항체들을 확인할 거라고 한 것 같다. 상담실에서 나와 이제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드디어 오늘 1차 기형아 검사의 결과를 들을 시간이다. 촬영된 초음파를 이리저리 보시며 매우 확실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일단 오늘 검사 결과로는 목 두께의 수치 정상, 태아의 크기도 정상, 코 뼈도 잘 자랐고 뇌의 발달도 잘 되고 있단다. 탯줄도 잘 있고 손 발도 잘 발달하고 있다고.. 부족했던 양수도 이제 적당하다고..(물 먹느라 고생했어 여보. 쉬 싸느라 고생했어 여보) 요즘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순간은 아내가 건강하다는 소리와 예쁨이가 잘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기뻤던 것은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안정기’라는 단어가 나왔다. 전에 쓴 포스트에 말했듯이 임신에 있어서 안정기란 없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안심할 수 있는 단계에 오면 ‘안정기’라는 단어를 쓰나 보다. 의사 선생님께서 안정기에 들어섰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활동해도 좋다고 말씀하신다.(산책은 30분부터 조금씩 늘려가는 게 좋다고 한다) 선생님의 ‘안정기’ 거론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우리 마음을 안정시켰다. 

     

     

      의사선생님의 오른편에는 아기 양말이 있었다. 아내도 나도 계속 그 양말에 시선을 뺏기니까(갖고 싶어서 간절히 바라본 게 아니라 예쁨이도 저 양말을 신을 날이 곧 온다는 게 신기해서이다) “16주 때 오시면 드릴거예요.”하신다. 우리 같은 사람이 참 많겠지? 그렇게 진료실에서의 조우를 마치고 다음 예약일을 잡았다. 함께 오고 싶어서 토요일로 잡았다. 이제 4주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까지의 병원 방문 간격 중 가장 긴 시간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참 길겠다 생각을 하며 수납을 하고 채혈을 했다. 수납은 10만원 중반의 금액이 나왔고 국민행복카드는 곧 동이 날 예정이다. 아참 가입한 태아보험의 1차 선물을 받고, 2차 메인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선택안도 받았다.

     

    태아보험 1차 선물

     

     2차 기형아 검사는 한 달 뒤이다. 오늘 검사한 항목 중 결과를 조금 기다려야 하는 것은 전화로 안내를 해주신다고 했고 최종 검사 결과는 2차 검사까지 한 뒤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지난 시간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듯 다가올 모든 임신의 시간은, 걱정이 사치였구나를 자각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아내와 집으로 돌아갈 때의 마음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도 두둥실 떠다니는 민들레 씨 같았다. 2주 동안 얼마나 자라 있을까, 잘 자라고 있을까,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 건강하게 있는 걸까, 이렇게 매일매일 수 백 번씩 궁금했는데 이제 해소를 넘어 해결이 된 느낌이었다. 여전히 성별이 궁금하긴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지금 예쁨이에게 말하고 대할 때 딸로 여길 때도 있고 아들로 여길 때도 있어서 이것을 통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가끔 혼란스럽다. 집에 도착해서도 우린 예쁨이 이야기를 한다. 아내는 초음파 영상을 놓질 않는다. 엄마구나. 이미 엄마구나. 고마워 여보. 간지나 여보.

     이제 완만한 고개 고개를 넘다가 큰 산 하나 겨우 넘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고개들을 계속 넘어야 한다. 혼자 가면 어려운 길이지만 둘이 가면 완주하고도 힘이 남을거란 생각으로 열심을 다하고 싶다. 내가 아무리 고생한다한들 아내의 고생을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사실 처음부터 내가 말하고 있는 남편도 임신해야한다는 말은 되지도 않는 말이다. 다만 그 마음으로 임신의 여정을 진정성있게 걷는다면 아내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피곤하면 잠깐 쉬어 가자’, ‘물이라도 한 잔 마실까’, 하며 늘 마음 전하며 같이 부지런히 걷다 보면 도착해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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