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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 안정기는 언제인가? 그리고 임신 10주차 초음파 [남편의 임신]
    임신과 돌봄 2020. 5. 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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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신 안정기?

     선생님 대체 안정기는 언제부터인가요? 지난 9주차 초음파를 마치면서 여쭈었던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는 우리의 노파심이 진하게 뭍어있다. 안 좋은 소식들을 주변에서 참 많이 접해 왔기 때문이다. 골라보는 것도 아닌데 TV에서도 유독 더 많은 임신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과도한 맘카페 검색은 해롭다는 것을 알고도 정보의 바다를 서핑하다 보면 함께 마음 아파하는 날이 종종 있다. 임신을 겪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이 소식 저 소식에 같이 마음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게 된다. 

     선생님께 안정기에 대해 묻기 전에 많은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마다 안정기에 대한 소견이 달라 정확히 언제다라고 답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그 중에 가장 일리가 있는 말은 ‘임신에 안정기란 없다.’였다. 열 달 내내 조심 또 조심하란 얘기다. 이 말에 나도 동의하지만 늘 조심하되 마음만은 좀 놓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주차가 거듭 될수록 불안함이 조금씩 녹고는 있지만 더 안심할 수 있는 때가 언제인지 궁금했다. 사실 궁금 이상이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직접 물은 것이다. 의사 선생님 역시 안정기는 없다는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17주 이후부터는 유산률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내심 12주 정도 말씀하시길 기대했는데 17주라고 말씀하시니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방학이 연기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예쁨이가 건강히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스타크래프트 쇼미 더 머니 치트키처럼 우리의 마음을 환기시킨다.

     결론적으로 임신에는 안정기는 없지만 일단 17주차가 넘어가면 그래도 좀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산달까지 늘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되 마음은 이너피스를 유지하며 지내야겠다.

     

    #임신 10주차 초음파

     9주차 진료를 좀 앞당겨서 봐서 그 다음 진료도 좀 빨라졌다. 그래서 10주차가 되자마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빨리 가는 게 우리에겐 무언가에 대한 해소이기도 하지만 잦은 초음파로 인해 아이가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 또한 의사 선생님은 태아에게 삐~ 하는 초음파 소리가 전해지긴 하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말씀이 있었다.

     10주라는 숫자는 되게 이상한 숫자다. 임신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이제 4분의 1선을 겨우 넘었다는 사실은 시간 참 더디 간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반대로 지금이 5월인데 올해 12월이면 예쁨이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시간 참 빠르다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10주는 임신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임신 경력자처럼 느껴지는 때다. 

     아내의 사랑스러운 이름이 불려지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살짝 닫아도 쾅, 매번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가 반동에 의해 살짝 다시 열리는 슬라이드식 진료실 문은 고칠 생각이 없나 보다. 나는 이제 쾅 소리도 나지 않게, 다시 스르륵 열리지도 않게 능숙하게 문을 닫는다. 보통 실력이 아니면 쉽지 않은 것을 결국 해내고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여느 때처럼 아내는 곧장 초음파실로 들어갔고 나는 ‘남편분 들어오세요’라는 말을 초 단위로 기다리며 대기한다. 전보다는 마음이 초조하지 않다. 그래 이렇게 편해지는 거겠지 싶다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보통은 들어가서 초음파를 시작하고 나면 이래저래 이야기가 들리는데 오늘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적막함이 ‘순간’을 ‘한참’으로 만들어버렸다.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ㄴㅍㅐㅓ앋아옫ㅅ요’ 분명 나한테 뭐라고 말하는건데, 정확히 뭐라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이밍상 남편분 들어오라는 소리다. 남편놈 들어오세요 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이 분은 목소리가 작으시다. 평생 눈치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나는 일단 알아듣고 불안함으로 막혀있던 숨을 나눠 쉬며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아내의 얼굴을 슥 보고 바로  모니터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예쁨이가 잘 있는 것을 확인했다. 잠시 적막했던 것은 그냥 아무 이유 없었던 것이다. 다들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나 보다.

     나도 이제 초음파를 좀 본다. 예쁨이의 전부 같았던 심장은 이제 몸의 일부가 되어 큰 별 작은 별의 모습으로 반복하며 운동하고 있었고 정확히 이등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안녕 예쁨아! 난 그냥 등신인데 예쁨이는 현재 이등신이구나.

     잘 보아야만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엉덩이인지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엉덩이가 머리 같고 머리가 엉덩이 같다. 머리와 엉덩이의 구분을 하고 나면 팔과 다리를 볼 수 있다. 이제는 ‘팔다리가 생겼다’ 정도가 아니라 ‘팔다리가 있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해졌다. 그리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조금씩 움직이는 예쁨이를 볼 수 있다. 아직은 어느 정도 상상력을 동원해야만 예쁨이의 자세를 가늠할 수 있다. 아내는 딱 보면 보인다는데 나는 해석이 조금 필요하다.

     의사선생님은 예쁨이의 크기를 잘 잴 수 있는 초음파 각도에 다다르면 마우스 포인터를 이용해 크기를 잰다. 크기를 재면 우측 하단에 측정한 크기와 출산예정일이 기록된다. 3.44cm의 크기를 기록했다. 요놈, 또 컸다. 

     

    임신10주차 초음파

     

     넓은 집 한쪽에 있는 예쁨이의 모습이다. 미치도록 귀엽지 않나요들..    ㅠㅠ   (예쁨이에게도 프라이버시와 초상권이 있을진데, 선공개 후 허락을 받을 예정이다) 선생님은 초음파를 이리저리 보며 왜 이렇게 굳이 끝에까지 들어가 있는건지 귀엽다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예쁨이가 구석진 곳에서 뭔가 안정감을 느끼는건가..? "괜찮은건가요?" 라는 질문에 갇혀 있는 것만 아니면 상관이 없고 지금 초음파상으론 충분한 공간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넓은 자리 놔두고 좁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예쁨이가 엉뚱하기도 하다. 어릴 적 옷장 안에 숨어 있길 좋아하던 우리를 닮은 것일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한편으론, 설마 불편한데 넓은 곳으로 나오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일부러 좋은 말로 안심시켜주는 스타일이 아닌 의사 선생님이기에 신뢰하며 걱정을 접는다. 그리고 우리도 안다. 우리가 남들보다 걱정이 조금 더 많다는 것을..  전에 양수가 부족하다고 하셨기에 양수에 대해서도 물으니 전보다는 좋아졌다며 조금 더 힘을 내서 물을 마시길 권고하셨다. 진료를 마친 뒤 12주 기형아 검사 예약일을 확인하고 만두와 찐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입덧 중인 아내는 고기만두는 못 먹고 김치만두는 먹을 수 있다. 

     

     

     집에 돌아오니 뭔가 여운이 남는다. 아내는 계속해서 초음파 영상을 본다. 엄마는 그렇다. 아빠는 따라갈 수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엄마에겐 더 있는 것 같다. 괜히 눈물이 나네.. 아내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내게 이렇다 저렇다 수다를 청한다. 이어 종이와 자를 꺼내 3.44cm로 접은 뒤 배에 가져다 대며 예쁨이는 지금 여기서 이 크기로 있는 거라며 평소보다 살짝 높아진 텐션으로 말한다. 이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제 나는 예쁨이의 존재함을 넘어 인격체로 느끼기 시작했다. 열 달 동안 서서히 완성되어져서 출산후부터 성장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 뱃속에서 이미 완성되어 그곳에서 잘 자라다가 세상에 나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내는 임신과 동시에 이미 육아를 시작한 것이다. 이미 수고와 희생을 선택하여 감내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 무얼 해도 부족한 느낌의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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