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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신 5주차 입덧(Feat.먹덧)
    임신과 돌봄 2020. 4. 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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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덧

     아내는 확실한 임신부다. 임신을 하면 체온이 높아지는지 이제 알았다. 아내는 연일 37.7도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심각하게 코로나19를 의심해보았지만 워낙 조심하며 자가격리 수준으로 사람도 안 만났던 우리였고, 다른 증상 또한 없었으며 원래 기초체온이 남들보다 높은, 몸도 마음도 열정적인 여인이었으니 이 체온이 임신한 아내에겐 정상인 것이다. 덕분에 자다가 추우면 살짝 붙어 그녀의 온기를 빌린다. 그럼 꿀잠.

     

    작년, 제주도 유채꽃밭

     

     우리에게 찾아온 기쁜 소식은 눈보다 코로 더 빠르게 찾아왔던 봄꽃의 내음처럼 우리의 매일을 은은하게 설레게 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실을 아직 자랑하지 못하고 꼭 꼭 잠가둬야하는 마음은 조금만 돌려버리면 치익 하고 터져 올라버릴 것 같은 흔들어진 탄산음료 같았다. 휙 돌려 따서 콸콸콸 마셔버리면 참 시원하련만.. 조금만 더 참자. 아, 임신부에게 탄산음료는 옳지 않다.

     때는 바야흐로 임신 5주 5일. 말로만 듣던 아내의 입덧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입덧이랑은 좀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밥먹다가 우엑우엑 하면서 자리를 뜬다. 이게 입덧인 줄 알았는데 입덧에도 종류가 있더라. 아내에게 찾아온 입덧은 그 이름도 귀여운 ‘먹덧’이었다.(입덧의 종류로는 먹덧 이외에도 토덧, 냄새덧, 침덧, 남편 입덧 등이 있다고 한다) 음식의 호불호가 분명히 갈렸으며 호감인 음식은 잘 먹되 많이 먹지 못하였고 불호감인 음식은 먹기 힘들어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었던지 간에 대략 한두 시간 후면 다시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마치 나처럼. 난 평생을 먹덧으로 고생하고 있다. 

     

     

     

     난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이 허기짐으로 인해 하루에서 수없이 당황스러운 기색 역력히 나 배고파, 나 배고파 말하는 아내가 어쩜 그리 사랑스럽고 귀엽던지.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많이 힘들어했다. 그 배고픔이 진짜 배고픈 게 아니라 자꾸만 올라오는 허기와 울렁거림을 잠재우기 위한 후라이였기 때문이다. 배고픔뿐만 아니라 냄새에 대해서도 굉장히 민감해졌다. 

     

    예민보스 또르

     

     아내는 원래 후각이 매우 발달한 알아주는 개코이셨는데 이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가 되어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약이나 무기류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꽁꽁 봉해진 소량의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도, 얼마 차지 않은 쓰레기통의 냄새도 알아차렸다. 냉장고를 열면 나는 특유의 찬 냄새도 불편해졌고,  잘 지어진 쌀 냄새, 기름 요리의 냄새에도 불편해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먹덧을 시연하기라도 하는듯 금방 배고파져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킁킁킁.

     임신 때 서운한것은 평생 간다고들 한다. 난 다시 한 번 최고의 서비스를 선보일 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아내가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 나선다. 아내는 젤리 광이다. 하지만 건강에 상당히 좋지 않기에 젤리 및 불량식품을 제외한 세상에 있는 모든 먹거리의 이름을 대며 어떤 것을 먹어야 아내도 예쁨이도 만족해할지 찾아가기 시작했다. 

     

     

    #첫번째 미션은 마카롱이다.

     집이 중심상가권과는 꽤 거리가 있었어서 그런지 배달 어플로 주문한 마카롱은 연신 주문 취소 안내를 받았다. 아내는 조금 과장해서 오열 직전이었다. 자 이제 내 차례다. 주문 취소 안내를 받았던 자가용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마카롱 가게에 호기롭게 전화를 했다. “아니 결제까지 했고 주문을 한 번 받았으면 책임을 지셔야지 왜 취소를 하고 그러십니까? 제 아내가 그 위대한 임신부란 말입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고 “제가 찾으러 갈 테니 상품을 준비해놔 주세요. 15분 걸립니다. 네네 감사합니다.”라고 한 후 츄리닝 하나 걸치고 겁나 멋있게 출발했다. 

     15분 거린데 모든 교통법규와 질서를 잘 지키고도 10분만에 도착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마카롱 집을 조금 지나 주차를 한 후, 살벌하게 싸우는 젊은 커플을 뒤로하고(평소 같았으면 살짝 구경했다), 매장 앞에 개똥을 누고 있는 비숑과 없는 똥 봉지를 찾는 견주의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마카롱을 픽업해서 집에 돌아가는 길.

     

    마카롱 좋아해

     

     이 마카롱을 보며 행복해할 아내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슬픈 장르가 아니었는데 눈물샘이 막 나대더라. 이런걸 ‘헌신’의 기쁨이라고 해야 할까.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기뻐하는지 고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행하는 것. 수고와 소비가 동반됨에도 불구하고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기쁘고 보람 있는 그 일. 집에 돌아와 환호성과 함께 마카롱을 맛보는 아내보다 분명 내가 더 행복했다. 그리고 이 즐겁고 재미난 일을 또 할 생각에 벅차올랐다. 마카롱은 정말 맛있었고, 다음날은 소프트 콘에 꽂히셔서 바로 먹었으며 그 다음 날은 소프트콘을 여러 개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았다. 

     

    보통 한 밤 중에 가면 아이스크림 기계 청소중인데 다행히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임신을 한 아내로 인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편안하게 글을 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썰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 약간의 다사다난?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한시간에도 몇 번씩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들과 몸의 반응으로 휴전도 협상도 없이 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현실이고 팩트다. 남편도 임신해야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한계로 임신하지 못하니, 이 시기의 상황들을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찾아보자. 

     

    #아내의 임신초기, 특히 입덧 시기에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본다.

     

     

    1. 음식물 쓰레기 치우기 : 말 할 없다. 보이는대로 치우자.

    2. 쓰레기 치우기: 바로 바로 버리기엔 종량제 봉투의 공간이 남을테니 봉투를 밀폐하고, 냄새 있는 쓰레기는 세척하고 건조한 버리면 좋겠다.

    3. 욕실을 청결히: 자주 환기 및 청소를 하고 향이 강하지 않은 은은한 디퓨저 하나 놓아도 도움이 되겠다.

    4. 식사 준비하기: 조리시의 냄새나 짓는 냄새에도 예민해지는 임신부이니 있는 최대한 도맡아 해보자.

    5. 식단 맞춰주기: 아내의 식성은 호불호가 갈린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더라도 아내가 역해 한다면 참자.

    6. 냉장고 정리 힘들어하는 음식 정리하기: 냉장고에 상해가는 채소나 과일이 있다면 즉시 폐기하고 역하게 느껴질만한 음식은 다시 한 번 밀폐하자.

    7. 대체식품, 선호식품 찾아주기: 영양이 가장 중요할때다. 못먹는게 많으면 먹을수 있는것을 많이 찾아야한다.

    8. 자주 조금씩 먹을수 있도록 해주기: 아무리 찾던 음식도 많이 못먹는다. 남긴다고 뭐라하지 , 막상 사왔는데 안먹어도 당연하게 여길 , 다만 소화와 영양균형을 위해 건강한 식습관 권면하기.

    9. 과잉보호하기: 은근히 좋아한다.

    10. 힘든일, 무리가 되는 일은 무조건 남편이: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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